<즐거운 힐링 연구소> 치유와 회복, 정화와 소통

기억의_흔적 +277

단지 이렇게 하라;  

  

고요해져서,  

  

  

너는 무엇이며  

  

하느님은 무엇인지에 대한  

모든 생각들,  

  

네가 세상에 대해 배운  

모든 개념들,  

  

그리고  

너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이미지들을  

  

내려놓아라.  

  

  

너의 마음에서  

네 마음이 진리이거나  

거짓이라고,  

  

혹은  

좋거나 나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비워내고,  

  

또한

네 마음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모든 생각,


그리고

네 마음이 부끄러워하는 

모든 아이디어들을


비워내라.



아무것도

붙들고 있지 마라.


과거가 가르쳐준 

어떤 생각 하나도,


전에 

네가 무엇으로부터 배웠든


단 하나의 믿음도

가져오지 마라.



이 세상을

잊고,


이 말도

잊고,


완전히

빈손으로


너의 하느님에게 오라. 

의미 없는 것을 반복하거나 떠든다고 

그것이 의미 있게 되지는 않는다. 


조용한 길이 탁 트여 있다. 


그 길을 행복하게 따르되 

무엇이 그래야만 하는지 묻지 마라.

거룩한 순간은 창조의 순간이 아니라,  
인식의 순간이다.  
  
왜냐하면 인식은  
비전과 판단의 중지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직 그때에만  
안으로 눈을 돌려  
  
거기에 단순히  
눈앞에 나타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아무런 추리나 판단 없이  
볼 수 있다.  


사람은 모든것이 괜찮은 상태지만  

스스로 문제를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사람은 완전하고 풍요롭지만  

부족함을 믿는 믿음이  

그가 가진 창조력을 사용해  

결핍을 현실화시킨다.  

용서란 무엇인가?  



1. 용서는 너의 형제가 너에게 행했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는 일어난 적이 없었음을 인식한다. 용서는 죄들을 사면함으로써 그것들을 실재로 만들지 않는다. 용서는 아무런 죄가 없었음을 본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너의 모든 죄들이 용서받는다.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잘못된 아이디어가 아니라면 무엇이 죄란 말인가? 용서는 단지 그 아이디어의 허위성을 볼 뿐이며, 그럼으로써 그것이 사라지게 한다. 이제 그 자리를 자유롭게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2. 용서하지 않는 생각은 의문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리는 생각이다. 비록 그 판단이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마음은 닫혀 있으며 열리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지 않는 생각은 투사를 보호하며, 더욱 단단한 사슬에 자신을 얽맨다. 그럼으로써 왜곡들은 더욱 베일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며, 의심하기가 더 어려워져 그만큼 이성으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고착된 투사와 그 생각이 원해서 선택한 목표 사이에 무엇이 가로놓일 수 있겠는가? 



3. 용서하지 않는 생각은 많은 것들을 행한다. 그 생각은 광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자신이 선택한 경로를 방해한다고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닥치지 않고 비틀거나 뒤집어 버린다. 왜곡은 그 생각의 목적인 동시에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이다. 용서하지 않는 생각은 실재를 분쇄하기 위해 광포하게 날뛰며, 자신의 관점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4. 다른 한편, 용서는 고요하며,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용서는 실재의 어떤 측면도 거스르지 않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실재를 뒤틀려 하지도 않는다. 용서는 단지 바라보고, 기다리며, 판단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으려는 자는, 자신의 용서할 수 없음을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에,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용서하려는 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환영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5. 그러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용서로 하여금 너에게, 네가 성령을 통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주도록 하라. 성령은 너의 안내자이자, 너의 구원자이며 또한 보호자이다. 그의 희망은 굳세며, 너의 궁극적인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 성령은 이미 너를 용서하였다. 왜냐하면 용서하는 것이 하느님이 성령에게 주신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제 너는 성령의 기능을 공유함으로써, 성령이 이미 구원한 너의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성령은 그의 죄 없음을 보며, 그를 하느님의 아들로서 존경한다.

신의 새끼

기억의_흔적2014. 7. 26. 16:45

어떤 지인이  

술에 가득 취해  

내게 말했다.  

  

개새끼는 개이고,  

말새끼는 말이면,

  

신의 새끼는  

신이 아니냐고.  

  

그러니,

"나"라는 존재는  

영이며, 완전이고,   

사랑이고, 평화이며,  

부요이고, 풍요이며,  

전지, 전능, 편재, 불멸이라고.  

  

그리고는  

다른 지인이

미션스쿨에서 배운것이 기억난다며  

술집에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젠장,  

그 어느 교회에서보다  

성령이 밀려오더라.  


춤을 잘 추어야 하는 세상에서  

다르게 추는 사람이 있다.  

  

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담과 하와가 먹었던  
선악과 라는 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해준다던  

신과 같이 되게 해준다던 열매는....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아주 좁은 틀로만 보고 있는....

  

생각, 평가, 판단, 비판, 비난  

의견, 추측, 선입관,  

이성과 개념의,  


옳고, 그름의 열매가....  

아니었던가....  

  

신을 믿지 못하는 나는  

오늘도 심판의 보좌에 앉아  

선악과를 따 먹는다.  

네가 신과 함께 

결정하는 법을 배웠을 때, 

모든 결정들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쉽고 바르게 된다. 


애씀도 없으며, 

너는 여름에 조용한 오솔길을 따라가듯이 

부드럽게 인도될 것이다. 


오직 너 자신의 의지만이

결정을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성령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너의 모든 질문에 지체 없이 답해줄 것이다. 


성령은 안다. 

그리고 성령은 너에게 말해줄 것이며, 

그런 다음 너를 위해 그것을 할 것이다. 


피로에 지친 너는 

이것이야말로 잠자는 것보다 더 

편안한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는 

죄의식을 잠 속으로는 가져갈 수 있으나, 

이 안으로는 가져올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름 돋는다
믿는대로
자신의 현실을 창조한다는 것이

상담을 하며 보니
불행하다는 사람은
어떤 행복한 순간에도
가장 불행한 것을 선택하고

화난 사람은
굶주린 늑대처럼
어떤 선한 사람이라도 할찌라도
상대를 바꾸어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이유를 만들어
증오와 분노를 폭발시키더라

기억하자
내가 못 보는 나도
믿음이 나의 현실을
창조하고 있을 있을테니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사랑할땐 미친듯이 사랑하자
아플땐 미친듯이 아파하자
평화할땐 미친듯이 평화하자
화가날땐 미친듯이 화를 내자
기쁠땐 미친듯이 기뻐하자
슬플땐 미친듯이 슬퍼하자
뿌듯할땐 미친듯이 뿌듯하자
수치러울땐 미친듯이 수치러워하자
평안할땐 미친듯이 평안하자
두려울땐 미친듯이 두려워하자
즐거울땐 미친듯이 즐거워하자
우울할땐 미친듯이 우울하자
행복할땐 미친듯이 행복하자
불행할땐 미친듯이 불행하자

그러나 다만 기억하자
그런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내가" 그런 상태가 아니라
"그것"이 머무는 것 뿐이라는 것을

또한
"너" 때문이 아니고
"나" 때문도 아니라

그저
그러고 싶어하는 내가
스스로 표출할 계기로
삼았을 뿐이라는 것을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오늘 

너에게 말씀하신다. 

그분의 음성이 

너의 침묵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씀은 

너의 마음이 

잠깐 동안 고요해지고, 

 

또한 

무의미한 욕망들이 

잠잠해지기 전에는  

들릴 수 없기 때문이다. 

 

조용히 

그분의 말씀을 기다려라. 

 

네가 오늘 불러와야 할 

평화가 네 안에 있다. 

 

그 평화는 

너의 가장 거룩한 마음이 

자신의 창조주의 음성이 말하는 것을 

들을 준비가 되도록 도울 수 있다. 

퀴블러 로스(E. K bler Ross, 1968)의 죽음의 5단계 


[죽음의 순간], [죽음과 죽어감], [인생수업], [상실수업], [사후생] 등 저작



1. 부정 (Denial) 


임종에 가까운 대부분의 환자가 경험하는 첫 단계는 부정으로 환자 들이 자신의 병이 치유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 입니다. 부정은 환자의 언어나 행동에 의해 나타납니다. 즉" 아니야, 난 믿을 수 없어, 나에게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어." 라는 표현을 흔히 하게 되고 환자는 진단을 잘못 내렸다는 생각과 좀더 나은 진단이 내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의사와 여러 병원을 찾아 다니게 되며 환자는 검사 결과가 다른 사람의 것과 바뀌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부정의 단계에서 부정을 표현하는 환자의 말과 행동의 몇 가지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다른 사람의 일인 것처럼 심각하지 않게 증상을 이야기한다. 

* 죽음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며 죽음에 대한 말이 나오면 즉시 말을 돌린다. 

* 공개적으로"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 비의학적 치료법이나 신을 통해 치유 받고자 노력한다. 

* 자신의 질병이나 증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다. 

* 증상이 자연히 없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치료를 거부한다. 

* 신체나 외모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 질병을 가벼운 것으로 이야기한다. 

* 아직 죽을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 어떤 병인지 알지만 자신은 꼭 회복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먼저 간호사는 환자가 부정의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환자에게는 부정할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다음 환자가 사실을 직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을 때 환자로 하여금자신의 병에 대해서 좀더 현실적인 견해를 갖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만일 환자가 그의 임박한 죽음에 관 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고통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입니다. 

  

2. 분노 (Anger) 


환자는"하필이면 내가"라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병원 직원에게 또는 신에게까지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현합니다. 이 분노의 단계는 가족들이나 직원들이 극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분노가 수시로 바뀌고 감정을 주위 환경에 전가시키기 때문입니다. 가족에게나 간호사에게 자주 불만을 터뜨리며 의사에게도 불만이 많습니다. 


▶환자의 가까이에 있는 사람(가족이나 간호사)은 무엇을 하든지 간에 더 자주 환자의 분노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경우 간호사는 환자가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환자의 이러한태도는 주위의 건강한 사람들의 건강을 질투하는 것이며 일찍 죽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는 것입니다. 환자는 자신은 곧 죽게되고사람들이 자기를 잊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고 불평을 하며 주위로부터 관심을 끌려고 노력합니다. 이때 간호사나 의료진이 환자의 분노의 원인을 생각하지 않고 사적인 일로 받아들이며 분노에 반응을 보인다면 환자는 더 심한 분노를 일으킬 것이며 환자의 적대적 행동은 심해질 것입니다. 만일 간호사나 가족이 환자로 하여금 그의 분노를 표현하도록 한다면 환자는 편안해 하고 목적 없이 간호사를 자주 부르거나 괴롭히지 않을 것 입니다. 환자가 존경과 이해와 관심을 받으며 그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을 알면 그의 목청은 한결 낮아지고 성난 요구도 훨씬 줄어들게 되며 자신이 아직도 가치있는 인간, 보살핌을 받는 사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활동이 허락된 인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3. 타협 (Bargaining) 


첫 단계에서는 슬픈 현실을 대면할 수가 없고, 둘째 단계에서는 사람들과 신에게 노골적으로 분노를 표현하고 나면, 환자는 타협을 시도합니다. 그래서 불가피한 사실을 어떻게든 연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루어 착실한 행동을 보이고 특별한 헌신을 하기로 맹세함으로써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의 소망은 생명을 연장하는 것, 며칠이라도 좋으니 통증이나 신체적 불편 없이 보냈으면 하는 것입니다. 타협은 대개가 절대자와 하는 타협들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은 비밀로 붙여지거나 다른 말속에 언뜻 비치거나 원목실에서 사사로이 말하거나 합니다. 자기 몸의 일부나 전체를 의학 발전을 위해 기증하겠다고 언약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언약이라는 것은 죄의식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의료진은 환자의 행동이 미성숙하며 어린아이 같고 환상에 젖어 있으며 어른으로서는 적당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환자의 소망을 묵살해 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간호사는 이러한 행동이 정상적이며 환자가 다음 단계를 위해 준비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 우울 (Depression) 


회복의 가망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병을 더 이상 부인하지 못하게 될 때, 증상이 더 뚜렷해지고 몸이 현저하게 쇠약해질 때, 환자는 더 이상 웃어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초연한 자세와 무감동, 분노와 격정은 머지않아 극도의 상실감으로 바뀌며 심한 우울증에 빠집니다. 

이 단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우울증이 있는데, 그 하나는 반작용적인 우울증이라 부르며 이것은 과거나 현재의 손상과 관계됩니다. 환자는 부모 없이 남게 될 아이들에 관하여 또는 막중한 경제적 부담을 지게 될 가족에 대한 걱정을 합니다. 또 다른 우울증은 그가 사랑했던 모든 사람과 물건, 그 자신과 그에게 중요했던 모든 것의 손실과 관련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예비적 우울증이며, 이 단계에서 환자는 아주 조용히 있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는 환자가 슬픔에 젖도록 놓아두어야 하며 그가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필요로 할 때 옆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혹은 이야기를 하며 조용히 귀담아 들어 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한 우울증에 빠질 때 환자는 별로 대화를 원하지 않으며 환자는 자기와 같이 느끼고 슬퍼하며 자기 옆에 있어 줄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5. 수용 (Acceptance) 


환자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또한 앞서 기술한 과정을 거치면서 도움을 받았다면, 그는 자기'운명'을 두고 분노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 다음 단계에 들어갑니다. 그는 이전에 자기 심중을 거쳐간 감정들을 털어놓을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산사람과 건강한 사람에 대한 질투와 분노를 이야기할 것이고 머지않아 자기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정든 곳을 잃게 되리라고 한탄할 것이며 또 어떤 기대를 가지고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볼 것입니다. 환자는 대개 극도로 지치고 쇠약해지며 감정의 공백기를 가집니다. 

수용을 행복한 감정의 단계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고통이 지나가고 몸부림이 끝나면,"머나먼 여정을 떠나기 전에 취하는 마지막 휴식"의 시간이 오는 것입니다. 


▶임종환자가 일종의 평안과 수용의 단계로 들어감에 따라 그의 관심의 세계는 점점 좁아집니다. 그로 인해 환자는 혼자 있고 싶어하고 때로는 문병객을 달가와하지 않으며, 사람이 방문을 해도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의사 소통은 언어보다도 무언의 대화로 바뀝니다. 임종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침착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이 침묵의 순간이야말로 가장 뜻깊은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느낌을 수용할 때 환자와의 의사소통에 놀라운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버림받지 않았다는 확신에서 큰 위로를 받게 되며 동시에 자신은 사랑받고 있으며 값있고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됩니다.이 시기는 환자 못지않게 가족이 도움과 이해와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 실제적인 환자의 임종준비에 대해 알려 주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가족의 상실감을 포용해 주어야 합니다.

초대

기억의_흔적2014. 4. 8. 11:08

초대  

  

당신이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는  

관심없어요.  

  

내가 알고싶은 건  

당신이 무엇을 

가슴 저리도록 동경하는지,  

당신 마음 속 

깊은 바람을 감히 충족시키려는  

꿈을 갖고 있는지.  

  

당신이 몇 살인지는  

관심 없어요.  

  

내가 알고싶은 건  

사랑을 위해,  

자신의 꿈을 위해,  

삶이라는 모험을 위해서라면  

바보처럼 보이는 것도 감내할건지.  

  

어떤 행성이 

당신의 달과 자리를 잡고 있는지는  

관심 없어요.  

  

내가 알고싶은 건  

당신이 자신의 슬픔 그 한가운데에 

가본 적이 있는지,  

삶이 당신을 배반했을 때  

두 팔 벌려 끌어 안았는지,  

아니면 더 고통 받을까봐 두려워  

움츠리고 마음 닫아 버렸는지.  


난 알고 싶어요.

당신이 고통과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지,

그게 나의 것이건 당신의 것이건

그 고통을 숨기거나 흐려버리거나 

바로 잡으려하지 않으면서.


난 알고 싶어요.

당신이 기쁨과 함께 있을 수 있는지,

그게 나의 것이건 당신의 것이건

그리고 당신이 야생의 본래 모습으로 

춤을 출 수 있고

당신의 손끝과 발끝까지 

그 환희로 가득 차게 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현실적이 되라고

인간의 한계를 기억하라고 

경고하지 않으면서.


당신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관심 없어요.


내가 알고싶은 건

당신이 자신에게 진실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실망시킬 수 있는지

배반했다는 비난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의 영혼은 배반하지 않을 수 있는지,

신념을 버리더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에게는 충실할 수 있는지.


난 알고  싶어요.

매일 매일이 아름답지 않을 때에도

당신은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서 

자신의 생명의 원천을 얻을 수 있는지.


난 알고 싶어요.

당신이 실패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지,

그것이 나의 실패건 당신의 실패건

그리고 호숫가에 서서 은빛 보름달을 향해 

"yes"라고 소리칠 수 있는지.


당신이 어디에 사는지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관심 없어요


내가 알고싶은 건 이런 거예요

비탄과 절망의 밤을 보낸 후에 

뼛속까지 지치고 상처 입고도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일어나 

해야할 일을 하는지.


나는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는지,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는 

관심 없어요.


내가 알고싶은 건

불구덩이 속에서도 

당신이 나와 함께있을 것이며, 

뒤로 도망치지 않을건지.


당신이 어디서 누구와 

무슨 공부를 했는지는 

관심 없어요.


내가 알고 싶은건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져갈 때

당신 내면에서 

무엇이 당신을 지탱하게 해주는지.


내가 알고싶은 건 이런 거예요

당신이 자신과 홀로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텅 빈 순간에 

자신과 함께있는 걸 정말로 좋아하는지. 


「초대」, 오리아 마운틴 드리머

자기 기만

기억의_흔적2014. 4. 7. 14:43

평상시보다  

목소리가  

높이가 올라가고,  

크게 얘기하면서  

조절이 잘 안되고,  

  

눈과 얼굴이 붉어지고,  

일그러졌으며  

숨을 가슴이나 그위로  

몰아쉬며  

  

말을 하거나  

대답 하는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거나  

  

숨이 가득 차올라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묻는다.  

  

"화 나셨어요?"  

  

그러면 그가 대답한다  

"나, 화 안났어!"  

  

화 뿐만 아니라  

생각과 말, 행동속에  

  

나 자신의  

자기 기만이 거의 숨어있다.  

뭐하세요?

기억의_흔적2014. 3. 29. 10:58

뭐하세요? /

응....
^^....  
그냥 우두커니....

모든 생각은 방어기제이다.  

  

지금 이순간에  

일어난 사건, 일어난 감정이  

마주하지 않은 채  

과거가 되어  

지금 현재를 압도하는 것이다.  

  

지금, 힘든 이유는  

  

과거의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몇가지 장면  

그것에 묶여있는 신념  

  

그리고,  

그때 마주하지 않은 감정 때문이다.  

  

때로는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지만, 

신념과 감정만이 남아  

가끔씩 파도처럼 밀려온다.

  

지금은 없지만  

마치 있는것 처럼   

지나간 것이  

지금 현재를 덮고 있다.  

  

좁은 문으로 가는 길은  

지금 여기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과 감정, 생각들을  

알아차리고, 마주하고, 흘러가게 두는 것이고  

  

그 문을 여는 열쇠는  

존재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받아들임을 통한  

있는 그대로의 사랑이다.  

  

원래 나는 지금 이순간,  

공 혹은 신과의 하나됨으로 인해  

용기, 받아들임, 사랑, 평화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공 혹은 신과의 분리되었다는 착각으로  

결핍이 생겨나고  

거기서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  

뭔가 해야 할것같은 생각  

즉, 두려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것을 잊은 탓에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저항하기 때문에  

회피하거나 싸워서  

  

마주하지 않은 일들이  

마주하지 않은 감정들에  

고통 혹은 힘듦이라는 에너지를 덧붙여서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슬퍼"로 묶이는 것이다.  

  

그리고, 

알아차리고, 마주하고, 흘러가게 두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직면"이라고 부른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즉, 직면하는 5단계를 

부정과 고립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

이라고 얘기했다.







에고를 두려워하지 마라. 에고는 정녕 너의 마음에 의존한다. 

그리고 네가 에고의 존재를 믿음으로써 에고를 만들었듯이, 

에고에게서 믿음을 철회함으로써 에고를 쫓아버릴 수 있다. 

에고의 존재를 믿는 책임을 다른 누구에게도 투사하지 마라. 

그러면 너는 오히려 그 믿음을 보존하게 될 것이다. 


너에게 에고가 존재하는 책임이 있음을 기꺼이 스스로 받아들이려 할 때, 

너는 모든 분노와 공격을 내려놓게 된다. 


왜냐하면 분노와 공격은 

너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투사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너의 잘못이라고 받아들인 후에는, 

그 잘못을 간직하고 있지는 마라. 


그 잘못을 빨리 성령에게 넘겨주어 

완전히 무효화되게 하라. 

그럼으로써 그 잘못의 모든 결과가 

너희의 마음과 온아들에게서 전체적으로 사라진다.

사랑은,

기억의_흔적2014. 3. 22. 13:28

사랑은,  

  

'있다' 라는 존재  

있는 그대로, 그저 두기  

받아들임, 수용, 포용을  

포함하고 있다.  

  

나는 그대로 있으며,  

너도 그대로 있다.  

  

그리고 '생각하는 상태'가  

점차 직관적 이해로 대체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면  

'생각하는 상태'와  

그 정신적 과정은  

자연발생적이고 직관적인  

'아는 상태'로 대체된다.  

  

생각, 말, 개념, 철학, 신념,  

논리는 건너뛴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높은 진동 수준에서 우주의 만물이,  

다른 만물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인 상태(Oneness)'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는 이해는  

서로 연결된 장으로부터  

'계시'처럼 펼쳐진다.  

  

아는 작용은  

한정된 부분에서가 아니라  

전체를 망라해 이루어진다.  

  

생각하는 상태는  

직감으로  

직관적 이해로  

영감으로  

아는 상태로  

계시로 점점 펼쳐진다.  

  

- 놓아버림 중에서와 몇가지 첨언 -  

- 자신의 힘을 남들에게 주어 버림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당신은 기분이 좋아 집니다.
의기양양해집니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낌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당신을 좋아하거나 인정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은 좌절합니다.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자신의 모든 힘을 남들에게 주어 버렸습니다
남들과 절망적으로 얽혀 버렸습니다.

- 남들과의 얽힘에서 해방되기

남들과의 얽힘에서 해방되려면,
남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모든 방식을 의식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인정, 받아들임을
구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마다
자신의 힘을 그들에게 주어 버리고 있음을
시인하고 인정하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를 기쁘게 해 주려 하고 있다면,
그러고 있음을 판단없이 시인하고 인정하고 고백하세요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기대

기억의_흔적2014. 3. 14. 16:42
어떤 음식점이
아주 맛있다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별로 였다

영화도
아주 재밌다고 해서 보니
별로 였다

너무 기대를 한 탓이다

기대는
어떤 상을 만들어
잔뜩 커져버린 허상으로
실재를 가린다

나에대해
간절히 바라고 원할 수록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밥 - 너에게

기억의_흔적2014. 3. 14. 12:11

밥 -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서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천양희 -

자연으로 있는  

그런 삶이 자꾸 흘러온다.  

  

입을 거리, 먹을 거리,  

사용할 것과 사는 곳  

그리고 마음도   

애쓰거나 인위적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것이 좋다.  

  

오래전에  

한때 꽂혀서 찾아봤었는데,  

대부분 정보도 없고  

가격이 너무 비싸서  

포기 했었다.  

  

일단 나열해 보고  

차례로 자세히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용하는 것으로는  

천연 화장품,  

천연 스킨, 천연 로션,  

천연 폼클린징, 천연 비누,  

천연 샴푸, 천연 바디샤워  

천연 립밤 정도면 될 듯하고  

  

세제로는

천연 세탁 세제  

천연 주방 세제  

천연 욕실 세제  


약은  

아시는 한약사님이  

천연 한방 어린이 감기약을 만들어 파시더라  

힐링, 한방, 민간요법, 자연요법  

  

집은 

적은 비용과 자연적인 

생태집이 있는데,

흙집, 목조 주택도 있지만  

에너지 유출이 적어 

패시브 하우스로 기능할 수 있는

스트로베일 하우스가 있다.

짚으로 짓는 집이다.

  

농법으로는  

자연 그대로 잡초와 함께 기르는  

자연농법이 있다.  

  

먹거리와 입을 거리는  

좀더 찾아 봐야 할 듯 하다.  

자연으로 있는

그런 삶이 자꾸 흘러온다. 


입는것과, 먹는것,

사용하는 것과 사는 곳 모두

그런 것이 좋다.  


천연 화장품, 천연 샴푸, 천연 세제와 같이

자연 그대로의 것을 

만들어 사용할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한때 꽂혀서 찾아봤었는데,

대부분 정보도 없고

가격이 너무 비싸서 

포기 했었는데 말이다.


일단 나열해 보고 

차례로 자세히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사용하는 것으로는

천연 화장품,

천연 스킨, 천연 로션, 

천연 폼클린징, 천연 비누,

천연 샴푸, 천연 바디샤워

천연 립밤 정도면 될 듯하고


세제로는

천연 세탁 세제,

천연 주방 세제,

천연 욕실 세제.


집은 

적은 비용과 자연적인 

생태집이 있는데,

흙집, 목조 주택은 

에너지 유출 너무 크고

에너지 유출이 적어 

패시브 하우스로 기능할 수 있는

스트로베일 하우스가 있다.

짚으로 짓는 집이다.


농법으로는  

자연 그대로 잡초와 함께 기르는  

자연농법이 있다.  


먹거리와 옷 같은 것은

좀더 찾아 봐야 할 듯 하다.  

첫번째는 물질적 소유다.  

결핍으로부터 나온 욕망에 잡혀 있다.  

보통의 사람들의 삶이다.  

  

두번째는 영적 소유다.  

나눔과 공유가 있지만,  

여전히 욕망이 숨어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사람들이 있다.  

  

세번째는 무심, 무소유다.  

여전히 거룩한 것과 속된것,  

옳고 그름, 판단과 분리로 부터 기인된  

싸움이 숨어 있다.  

불교와 자이나교, 도교의 사람들이 있다.  

  

네번째는 초월, 초탈이다.  

소유하기도, 안하기도 하며, 

섞여 살기도, 안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흘러들어오고 흘러간다.  

거기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유롭고 받아들이며 사랑한다.  


이러한 사람은 백지 같아서,  

첫번째 사람들로부터는  

세상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두번째 사람들로부터는  

제멋대로이고 거룩하지 않다는  

세번째 사람들로부터는  

타락한 사람이라는  

그들의 투사를 받기 쉽다.  

  

어린 때  

그저 욕망하는 대로 산다.  

  

조금 큰 후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어떤 "해야한다" 라는 틀안에서  

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깊은 내면에는  

애씀으로 인한 힘듦과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게 분노하며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투사한다.  

  

그리고 나중에,  

어떤 높은 뜻을 세우고는  

높은 뜻과 아닌 것을  

나누고 판단하고 구분한다.  

  

그 모든것이  

그저 자기 의로움일 뿐임을 마주하며  

그것이 아무 소용없을을 알았을 때  

점차로 모두 버린다.  

그리고, 점차로 자유롭다.  

  

모든 것이 지나간 후에  

깊은 내면, 영혼으로부터 올라온  

스스로의 흐름을 가지고  

흘러가기 시작한다.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이나,

구분하고 판단하며,  

싸우지 않는다.  

물론 분노도 없다.  

  

그냥 그저,  

유유자적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실재는 생각과 말과 글로 되어지지 않는다.  

실재는 오직 경험으로만 가능하다.  

  

말은 실재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서 나오고,  

실재를 경험한 사람은 말이 없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떠오를 때  

높은 하늘에서 광활한 대지를 바라볼 때  

  

한가닥 줄에 매달려 번지 점프를 막 내딛었을 때  

간절히 보고 싶은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딱 그 순간, 경이로움을 설명하고 있다면  

진정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것일까?  

  

맛있는 고기를 구울 때  

눈과 냄새, 굽는 소리를 경험하고  

이내 맛을 경험하려는데  

  

고기 먹는 방법을  

한시간 동안이나 설명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고기를 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  

구워서 먹여 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니면 최소한  

먹어본 사람이라도.  

  

마음, 깨어남, 깨달음, 신에 관해서라면  

더더욱  

일명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의 농법.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 생명 농법.  

자연 농법, 자연 재배, 자연 농업.  

무농약 무비료 농법, 친환경 농법.  

  

가능한한 모든것을 자연에 맡겨서  

썩지 않고 생명력이 가득한 것을  재배하며,  

따라서 오히려 비용과 노동력을 절감한다.  

귀농하는 도시인들에게 오히려 맞을 듯.  

  

도서  

  

기적의 사과, 사과가 가르쳐 준것,  자연재배  

- 기무라 아키노리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아무것도 아무것도, 생명의 농업  

- 후쿠오카(후꾸오까) 마사노부  

  

채소의 진실, 진짜 채소는 그렇게 푸르지 않다  

- 가와나 히데오  

  

기적의 자연재배, 기적의 채소  

- 송광일  

  

가와구치 요시카즈  

- 신비한 밭에 서서  

  

잡초의 재발견  

- 조지프 코캐너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야마기시즘 농법  

- 야마기시즘실현지출판부  

  

영화 소개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Main.do?movieId=79814


SBS 스페셜 188회 09/11/22 <생명의 선택> 2부 다음천년을 위한 약속 - 뒷부분

http://blog.daum.net/abluepond/11294319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cia21&logNo=140183350962


기적의 사과의 기무라 아키노리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28/2009082801235.html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900443

http://www.pcblueberry.kr/gnu/bbs/board.php?bo_table=c04&wr_id=37


한국의 기적의 사과, 장성군 전춘섭씨 자연농법 기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86325.html

http://blog.daum.net/yejanong/37


송광일씨 기사

http://saygj.com/1016


어느 농부의 블로그

http://blog.daum.net/happy-hobby



조그만 성가심도  

그 밑에는 귀찮음  

그리고 짜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격렬한 분노에서 시작한다.  

  

분노하는 이유는  

그 순간 힘을 가진 강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며,  

  

적절한 이유를 만들어  

남에게 투사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악인이 되면  

내가 좋은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을 통해  

보호, 용기, 받아들임, 고요, 평화가 펼쳐지고  

몇 백배의 힘을 경험하면  

  

점차로  

분노를 내려놓기 시작할 것이다.  

도라 하는 도는 도가 아니고
이름이라 하는 이름은 이름이 아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하늘과 땅의 처음이며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 만물의 어머니이다.

늘 바라는 것이 없어야 그 묘한 것이 보이고 
늘 바라는 것이 있으면 껍데기만 보인다.

이 두 가지는 근원이 같으나
나타난 이름이 다르다.

같이 이를 신비롭다고 말한다
신비롭고 또 신비로우니 
모든 신비의 문이다

- 도덕경 중에서 -


이제 너 자신이 무능하다는 느낌과 관련된, 

모든 걱정들을 슬쩍 지나치도록 노력하라. 


너를 걱정하게 만드는 모든 상황은 

명백히 무능하다는 느낌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너는 그 상황을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 기적수업 워크북 중에서 -